안녕하세요 여러분.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요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뛰고 있습니다. 뜬금없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일이 그렇게 됐네요. 길게는 안 뛸 거 같은데 아무튼 일하는 내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글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왜 알바를 뛰기 시작하였는가.
나도 모름.
아니 음... 진짜 모르는 건 아니고 그냥 돈을 많이 준대서 갔습니다. 아는 친구가 그 공장에서 알바를 잠시 뛰었었는데 금융치료 확실하다고 해서 오? 싶어져서 지원 넣음. 그런데 진짜 돈을 어마무시하게 많이 준다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근로시간이 길고 법적으로 정해진 수당들을 모두 제대로 쳐주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돈을 많이 준다는 느낌입니다. 뭐 시급 만 원이고 별도 수당 없다 쳐도 주 52시간 꽉꽉 채우면 200만원은 넘겠지 같은 느낌? 그냥 일한 만큼 주는 것 같음
그리고 백수 생활이 눈치 보였고, 통장이 죽어가고 있었고, 돈이 없었고, 돈이 없었음
네 저는 돈을 원했어요. 그러면 안 되나요?
이것은 탐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시민의 보편적인 욕구입니다. 별로 돈이 급할 만한 심각한 일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나는 돈을 마음껏 쓰면서 놀고 싶었어. 만육천원 하는 연어덮밥을 덜덜 떨지 않고 마음껏 시켜먹고 싶었고 그것뿐입니다. 아니 봄학기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좀 과소비를 하고 살았더니 절약하는 방법을 모르게 되어서... 정신 차려보니까 진짜 통장이 위험수위에 다다라서... 이대로면 과자 하나 결제했다가 잔액부족 뜰 것 같고 아무튼... 네.
그렇다면 왜 하필 공장인가.
우선 친구가 다녀봤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됨. 그리고 이름 대면 다 아는 회사라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 같았음. 그리고 시간을 길게 써주니까 돈을 많이 줌... 원래 방학집중근로 신청하려고 했고, 엄마도 그거 하라고 했는데, 우리 학교는 방학 집중근로 제한시간이 월 40시간이니까요. 다른 대학 다 제한시간 주 40시간인데 여기만 월 40시간이면 뭐... 나보고 어떡하라고... 교외라서 시급 높게 쳐줘도 월에 40만원 50만원인데 사실은 교외 근로처중에 그런 식으로 시간 편성해 놓은 곳도 없고... 그러면 조정에 들어가야겠지? 그러면 나는 한 달에 일주일 정도만 일을 할 수 있겠지? 그런 식으로 두 달 일하면 나는 다른 알바를 구할 수가 없겠지? 다른 알바 못하고 두 달에 80만원 벌어서 내가 어떻게 밥을 먹고 살지? 아끼고 아껴도 생활비는 월 40만원 이하로 안 내려가고 월 40만원도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가능한 건데... 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근로 안 가고 시간 다 부어서 공장 알바를 뛰기로 했어요
실제로 방학 되면 잠깐 돈 벌러 오는 대학생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항상 사람을 구하고 있는 곳이라 그냥 전화하고 이력서 넣고 면접 보러 오라 해서 갔다가 출근하라 해서 감. 크게 보는 거 없고 그냥 신체만 멀쩡하면 되는 듯
뭘 하는가.
이 공장에서 알바했던 후기가 적혀 있는 모르는 사람의 네이버 포스팅이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다 내려가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사측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한 거겠죠? 그리고 나는 그런 상황을 겪고 싶지 않음. 그래서 특정될 수 있는 발언은 하지 않겠음. 패스.
근데 힘든 파트가 있고 안 힘든 파트가 있는데, 나는 주로 안 힘든 파트를 하고, 힘든 파트 하다가 팔 아파서 죽는 줄 알았음. 그리고 모든 파트에는 의자가 없음. 아무도 앉지 않음. 아무도 앉을 수 없음 의자가 없으니까. 그러면 모든 노동자들은 12시간 동안 서 있는 거예요. 12시간 동안 내 신체의 모든 하중을 발이 감당하게 되겠죠... 그러면 나는 발이 아프겠죠... 그러면 빠른 시일 내에 족저근막염이 오고 앓아눕고 일 못하고 패가망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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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글을 쓰자고 생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발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3일차였나 4일차였나 서 있으니까 뒤꿈치가 아픈 겁니다. 사실 그때까지 살면서 9시간 이상 연속으로 서 있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진짜 서 있어 보니까 아파서 미치겠더라고요. 지금은 나름 적응해서 괜찮아졌지만 그때쯤은 분노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분노의 5단계로 표현하자면 그때는 분노였고 지금은 타협임. 그러니까 이 나의 신체를, 내 전신의 하중을 고작 발바닥 두 개 가지고 지탱해야 한다는 사실. 심지어 걸어다니는 일도 아니고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그냥 걷는 것보다 발이 더 아프더라고요. 그게 살짝 힘들어서 엄마한테 불평했더니 보통 쉬지 말라고 의자를 없애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저희 어머니는 마트 계산원을 하세요. 꽤 오래 하셨어요. 그리고 옛날에는 마트 계산대에 의자가 없었어요. 서서 일해야 해요. 그게 힘들다고 계산원 분들이 항의하니까 겨우 마트 내 의자 비치를 의무화하는 법령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계산대에 의자가 없는 마트가 더 많죠. 설사 의자가 있다 해도 앉지 못해요.
마트 가보셨나요? 계산할 때 의자에 앉아서 계산하는 노동자 분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앉고 싶어도 앉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산원은 서비스직이고, 계산할 때 앉아 있으면 감히 손님이 왔는데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냐, 앉아 있으니까 편하냐, 버릇이 없고 예의가 없다, 이름 뭐냐 본사에 말하겠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까요. 그게 예의고 성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국에 참 많습니다.
그렇다면 손님이 없을 때는 마음 편하게 앉을 수 있을까요? 겠습니까? 앉아 있다가 손님이 와서 헐레벌떡 일어서면 손님들은 죄다 심기불편한 얼굴이 됩니다. 왜 손님들은 계산원이 편하게 앉아 있다는 사실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걸까요. 그냥? 아니면 감히 계산원 주제에 앉아 있어서? 계산원 따위 나보다 하급의 인간인데, 적어도 이 가게의 손님인 동안에는 직원에게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앉아 있으면 대우를 받는 기분이 들지 않으니까? 내가 깔보아야 하는 인간인데 몸이 편하면 안 되니까? 타인을 괴롭히는 것으로 대우받는다는 감각을 느끼니까?
비단 마트 계산원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편의점 계산대에 의자가 있는 곳도 많지만 없는 곳도 꽤 있습니다. 손님이 없어도 쉬면 안 되고 돌아다니면서 정리나 청소라도 해야 한다는 편의점 사장들의 생각이 의자를 없애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서비스업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공장에도 의자가 없더라고요. 의자에 앉을 수 없는 다른 파트도 많으니까 최소한 공평하게라도 하려고 모든 파트에서 의자를 없애버린 걸까요? 대체 누가 제게 그리고 이 많은 노동자들에게서 의자를 앗아간 걸까요?
누가 노동자에게서 의자를 앗아 갔을까?
모든 자본가가 일어서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이트칼라도 포함해야겠다. 사무직은 앉아서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까? 모든 인간이 일어서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도 회장도 예외 없습니다. 회장님 늙어서 다리가 아프시고 이런 거 알 바 아니고 무조건 일어서서 일해야 합니다. 운전기사도 일어서서 운전하는 겁니다. 개발자도 일어서야 하고요. 그냥 모든 인간은 노동할 때 일어서서 일하는 걸로 합시다. 16세 봉제공 엠마 리스가 체르노비치에서 예심 판사 앞에 섰을 때... 아무튼 기립하시오. 이것이 바로 인터내셔널
농담입니다.
이건 내가 지옥에 있으니 모두를 지옥으로 떨어트려야겠다 식의 원한 발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화이트칼라도 노동자입니다. 적이 아니니까요. 모두가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각계각층의 사장님들 회장님들 CEO님들이 일어서서 일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노동 시간 내내 일어서 있다는 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앉을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들은 알아야 합니다.
갑자기 생각났다. 노동과 의자에 대해 논하는 신춘문예 소설이 있었는데... 경향신문이었고... 아 방금 찾았습니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312312042005
괜찮은 소설이었어요. 의자 없이 열심히 일하고 나니까 더 와닿는 부분이 있네요.
취향은 아니지만 앉지 못하고 일하는 동안 이 소설을 생각했다는 걸 보면, 힘이 있는 소설이라는 뜻 아닐까요.
지금은 의자가 없다는 사실에 적응했습니다. 역시 12시간 연속으로 서 있으면 발바닥이 아프긴 하지만 처음처럼 발바닥에 불이 난 듯 홧홧하고 아프지는 않아요. 일어서서 일하기에 적응한 이후로 저에게는 다른 무서운 존재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컨베이어 벨트인데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부터 포장해야할 제품들이 한가득 내려옵니다. 저는 그걸 박스에 개수를 세가면서 계속 담아요. 다 담으면 또 새로운 박스를 꺼내서 제품을 포장해요. 사람 몇 명이 벨트에 붙어서 계속 그 일을 합니다. 내가 담지 못한 제품은 뒷사람에게로 넘어갑니다.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습니다. 영원히 제품을 박스에 담아요. 급하게 마구마구 담는데 잠깐 고개를 돌려서 시계를 보면 사실 3분밖에 안 지나 있습니다. 시간과 정신의 방에 들어온 것 같고 정신이 이상해집니다. 나는 분명 오래 일했는데 왜 아직 30분도 안 지난 거지 싶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에도 제품은 계속 내려오고요 저는 그걸 계속 담아야 해요 계속 계속 계속
컨베이어 벨트는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헨리 포드를 죽이자고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헨리 포드는 아쉽게도 이미 고인이고, 1947년에 죽었고, 따라서 저는 헨리 포드를 죽일 수 없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는 노동자에게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영원히 내려옵니다. 노동자 따위 컨베이어 벨트의 알 바가 아닙니다. 그것의 속도를 조작하는 것은 관리자이며, 더 나아가서 자본가입니다. 우리는 단지 컨베이어 벨트의 부품일 뿐입니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데도 조금의 보람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물론 컨베이어 벨트의 발명은 많은 혁신을 불러왔습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도 컨베이어 벨트로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그렇지만, 순전히 노동자의 입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긍정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시스템을 적용시킨 헨리 포드를 긍정할 수 없고 자본가를 긍정할 수 없습니다! 기계로 이루어지는 생산 아래 인간은 너무도 쉽게 지워집니다. 실제로는 이렇게나 많은 인간들이 기계의 틈새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노동자는 생산의 성과에서 철저히 배제됩니다. 모든 것은 단순한 숫자로 표현되고 그것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노동자는 숫자가 되고 값싼 부품이 되고 인력이 되고 새로운 기계가 되는데 그 모든 과정에서 인격체만은 될 수 없습니다. 노동자와 인격체는 동떨어진 개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걸까요? 아니면 하나하나 인간 대우를 해주면 이득이 되지 않으니까? 이득이란 대체 뭡니까?
이쯤되면 의구심이 들게 되는 겁니다. 돈 따위 그저 숫자, 인간 사회의 허망한 약속이고, 그 약속이 통하지 않는 곳으로 가면 단지 종이 쓰레기가 될 뿐인데, 그 허망한 약속이 뭐라고 인간은 이렇게나 발버둥치는 걸까요. 이미 많이 가지고 있는 자가 한가득 쌓아봤자 달리 쓸 곳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본을 모으고 싶어하는 걸까요? 위에 서고 싶어서? 깔보고 싶어서? 결국은 자본이 인간의 계급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 허망한 약속이?
그렇죠 그 허망한 약속을 벌기 위해 일하기 시작한 인간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아 나에게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는 돈이 있었더라면 출판업계, 각종 문예지에 돈을 광역살포해서 문학업계를 부흥시켰을 텐데
그런데 사실 이런 욕망을 가진 사람은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는 돈을 모을 수 없죠
하하
아무튼, 쓰다 보니까 너무 늘어났네요. 사실은 '앉을 수 없어 괴롭다', '컨베이어 벨트는 어떻게 노동자에게서 보람을 격리하는가' 정도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쓰는 도중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졌음. 그리고 나 자신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몰라서 100 정도 있는 할 말을 27 정도 했습니다. 이제 일주일 일한 신입 노동자가 노동에 대해 이래저래 쨍알쨍알 말할 군번은 아니긴 하죠. 무엇보다 이 일을 평생 직장으로 택한 사람도 있으니 함부로 말하는 것은 그런 분들에 대한 실례일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책을 읽어야겠어요. 역시 책 말고는 없나...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뭔가 쓰다 보니까 탈선했는데 대우가 나쁜 공장은 아닙니다. 우선 근로기준법을 모두 준수하고 있음. 좋은 사람들 많음. 너무 힘든 일은 오래 시키지 않음. 단지 의자가 없을 뿐. 그런데 그 점도 사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파트 중에는 아예 구조적으로 의자에 앉을 수 없는 파트가 있는데 몇몇 파트만 의자에 앉는다면 많이 문제가 되겠죠
하지만
ㅠㅠ
그래요 제가 욕하고 싶은 건 결국 자본주의였던 겁니다
타인의 위에 서고 싶은 욕망이란 뭘까요... 남을 깎아내려서라도 남의 위에 서고 싶은 욕망이란 무엇일까요... 어째서 사람들은 돈을 모아 상위 계급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요 왜 사람들은 경제적 부족함 없이 태어난 사람을 동경하고 부러워할까요 어째서 사람들은 상위 계급으로 갈 수 없으면 내가 이 가게의 손님인 동안은 직원을 깎아내려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요
나는 역시 인간의 마음을 잘 모르겠습니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도무지